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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(禪雲寺)의 말사이다.
887년(진성왕 1) 도선(道詵)이 창건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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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10년
임진왜란때 12개 암자와 함께 소실된 강천사를
선조37년(1604)에 다시 지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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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54년
6.25 한국전쟁때 완전 소실된 채 방치되어 있는
순창 강천사 터 전경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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현재
1959년 강천사를 복원
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24교구 선운사 말사로 되어있다.
혹은 1482년(성종 13)에 작성된 “강천사모연문”에 보면 신령이 광덕산(廣德山) 가운데서 명승지를 골라 초암을 짓고 지낸 것에서부터 유래한다고 나와 있다.
그러나 임진왜란 때 이 절과 12개의 부속암자가 전소되었으며, 1604년(선조 37) 태능(太能)이 중창하여 강천사만은 이전의 면모를 갖추었다.
그 뒤 1855년 금용당(金容堂)이 중창하였으나 6.25전쟁으로 보광전(普光殿), 첨성각(瞻星閣), 칠성각의 당우들이 불타버렸다.
그 뒤 주지 김장엽이 1959년에 첨성각을, 1977년 관음전을, 그리고 이듬해 보광전을 신축한 뒤 비구니의 수도도량으로 전승되고 있다.
근래에는 1992년 보광전을 대웅전으로 바꾸었고, 1997년 첨성각을 헐고 복원하였다.
역사적으로 이 절에는 비구승보다 비구니들이 많이 머물렀는데 그 까닭은
창건자 도선이 “강천산의 계곡은 음기가 서려 네군데에 수염이 없는 사람 즉 여승이 살아야 도량이 정화되고
빈찰(貧刹 )이 부찰(富刹)로 될 수 있다”고 한 예언에 따라 절을 유지하여 왔기 때문이다
오층석탑과
금강문(金剛門), 삼인대(三印臺)
현존하는 문화재로는 대웅전 앞에 있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2호인 오층석탑과 금강문(金剛門),
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7호인 삼인대(三印臺) 등이 있으며,
오층석탑은 1316년(충숙왕 3) 덕현이 중창할 때 건립한 탑이다.
이 탑 북쪽 약 1미터 지점에는 중대석(中臺石)과 보주(寶珠)만이 남아 있는 석등이다.
금강문은 1316년 덕현이 절 주위의 풍치가
금강산과 비슷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 전한다.
자연암석으로 된 사각문으로 높이 8미터 너비 4미터이다.
또한 이 절에는 천년을 살아 온 지네가 인간으로 변신하려다가 법당에서 피우는 향내음이 너무 독해서 인간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
그 앙갚음으로 요괴가 되어 매일 밤 승려 한 사람씩을 죽였다는 전설과 거지, 승려 그리고 돈에 얽힌 전설 등이 전해지고 있다.
강천사의 원명은 복천사(福川寺, 福泉寺)라 하였으며
또한 산세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할 형상이라 하여
용천사(龍泉寺)라고도 하였다.
강천사라는 이름은 선조 때 학자 귀봉 송익필이 이 곳에 유숙하며
“숙 강천사(宿 剛泉寺)”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었으며 이 때부터 강천사로 불리었다고 한다.